‘물가의 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 에 특수조건을 부가하여 제한한 사례 (국가계약법) | 2011나75203 한국토지주택공사 LH (3)
(4) 국가계약법의 1차적인 수범자는 국가 등의 계약담당공무원이다. 중앙관서의 장이나 계약담당공무원은 당연히 계약의 자유가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주의원리에 따라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기속된다.
국가계약법은 국가와 계약상대방의 계약관계를 물가변동과 환율변동에 따라 조정하도록 계약담당공무원에게 의무를 지우고 있다. 국가나 공무원이 이러한 법률상 의무가 있는데도 단순히 그에 어긋나는 조치를 한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그 의무 자체를 완전히 배제하는 특약을 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약속을 저버리는 것으로 민주주의원리와 법치국가원리에도 반한다. 국가의 사법권을 가지고 있는 법원은 국가나 공무원이 이러한 원리를 준수하도록 법률을 해석하고 적용할 임무가 있다.
대법원은 개인이나 기업이 행정법규를 위반한 계약을 한 경우에도 그 계약의 효력을 부정한 사례가 많다.
가령 대법원은 부동산 중개수수료의 한도를 정한 구 부동산중개업법(2005. 7. 29. 법률 제7638호 '공인중개사의 업무 및 부동산 거래신고에 관한 법률'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과 같은 법 시행규칙 등은 중개수수료 약정 중 소정의 한도를 초과하는 부분에 대한 사법상의 효력을 제한하는 이른바 강행규정에 해당하고,
따라서 구 부동산중개업법 등 관련 법령에서 정한 한도를 초과하는 부동산 중개수수료 약정은 그 한도를 초과하는 범위 내에서 무효라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07. 12. 20. 선고 2005다32159 전원합의체 판결). 이 판결은 공인중개사가 행정법규를 위반하여 체결한 계약을 무효라고 본 것이다.
계약담당공무원이 국가계약법 규정의 적용을 사전에 완전히 배제하거나 회피하는 약정을 함으로써 국가가 직접 법률을 위반하는 경우에는 개인이나 기업이 행정법규를 위반한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보다 더욱 쉽게 그 계약의 효력을 부정하여야 한다. 계약담당공무원이 공공계약의 공정성·형평성을 달성하기 위하여 공공계약의 내용을 규제하려는 입법부, 나아가 민주주의원리와 법치국가원리에 어긋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은 그 위법성이 더욱 중대하기 때문이다.
(5) 물가변동 등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규정은 1977. 4. 1. 대통령령 제8524호로 개정된 구 예산회계법 시행령 제95조의2에 처음 규정되었다가 1989. 3. 31. 법률 제4102호로 구 예산회계법이 전부 개정되면서 제92조에 규정되었다.
이후 1995. 1. 5. 제정된 국가계약법과 1995. 7. 6. 제정된 국가계약법 시행령에 그 내용이 반영되었다.
예산회계법의 입법자료에 기재된 제안이유에 따르면, 위 규정은 중소업자와 계약상대방을 보호하기 위하여 도입된 것이다. 예산회계법 시행령 제95조의2는 처음에는 '계약금액을 조정하여 지급할 수 있다'고 하여 재량적 규정 형태로 되어 있었으나,
국가의 계약금액 조정 기피 사례를 방지할 목적으로 1983. 3. 28. 대통령령 제11081호로 개정된 예산회계법 시행령 제95조의2는 '당초의 계약금액에서 조정한다'고 하여 재량의 여지가 없는 강행적 의무 부과 형태로 문언이 변경되었다. 이후 예산회계법과 국가계약법에도 위와 같은 강행적 의무 부과 형태의 문언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러한 입법 연혁을 살펴보면 물가변동 등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규정은 국가의 계약담당공무원에게 일정한 요건에 해당하면 재량의 여지를 두지 않고 물가변동 등에 따른 계약금액의 조정 의무를 부과하는 강행규정으로서 그 주된 목적은 계약의 상대방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6)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64조 제7항은 환율변동을 원인으로 계약금액 조정요건이 성립된 경우에 계약금액을 조정한다는 규정을 신설하였다. 이는 해외에서 자재 등을 들여와 물품을 공급할 경우 물가변동에는 환율변동으로 인한 것도 포함되어 있어 환율변동을 원인으로 계약금액 조정 요건이 충족된 경우에도 계약금액의 조정의무가 발생함을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규정한 것이다.
만일 환율변동에 따른 가격변동에 대하여 계약금액을 조정하지 않을 수 있다면 '계약금액을 조정할 수 있다'고 정하거나 처음부터 위와 같은 규정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서 특히 국가계약법 시행령 부칙 제2조를 주목하여야 한다. 이 부칙 규정은 "제64조 제7항의 개정규정은 이 영 시행 당시 이행 중인 계약으로서 이 영 시행 전에 환율변동을 원인으로 계약금액 조정요건이 성립된 경우에도 적용된다."라고 정하고 있다.
위 제64조 제7항이 계약의 효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단속규정 또는 임의규정이라면 부칙 규정은 무의미한 것이 된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아도 위 두 조항에서 정하고 있는 '물가변동 또는 환율변동(이하 이 둘을 포함하여 '물가변동 등'이라 한다)에 따른 계약금액의 조정 규정'은 강행규정이고, 이를 위반한 계약 조항은 무효로 보아야 한다.
(7) 계약상대방이 예측하기 어려운 물가변동이 있을 때 계약상대방으로 하여금 손실을 감수하고 당초 약정한 계약금액으로 이행하도록 하는 것은 계약이행을 포기하여 이행이 중단되거나 불완전 이행 등 계약이행의 내용이 부실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공공계약의 이행 중단이나 부실화로 말미암아 계약을 통해서 달성하고자 하는 공공의 목적이 좌절되거나 그 목적 달성을 위해서 더욱 큰 사회적 비용이 들 수 있음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물가변동 등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규정은 국가나 계약상대방이 물가변동에 대비하거나 환 헤징 등 환율변동에 따른 손실의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개별적인 조치를 취하였는지 아닌지에 영향을 받지 않고 물가변동에 따라 계약금액을 합리적으로 조정함으로써 계약이 중단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계약관계를 수정하게 한 것이다.
만일 물가변동 등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규정이 단속규정에 불과하다는 다수의견에 따르면 계약담당공무원은 물가상승이 예상되는 경우 사실상 언제든지 이러한 조정을 배제하는 특약을 추가할 수 있다.
더구나 계약담당공무원은 거래상 우월한 지위에서 계약의 내용을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고 계약상대방은 이러한 내용이 포함된 계약 자체를 계약상대방이 수용하든지 아니면 거부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는 물가변동 등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을 배제하고자 하는 특약을 정하고자 하는 유인은 더욱 강해진다.
다수의견은 법해석을 통하여 국가의 계약금액 조정 기피를 용인해 줌으로써 입법자의 의도와 달리 1983. 3. 28. 대통령령 개정 이전으로 회귀하는 결과를 만들고 있다.
(8) 국가나 공공기관의 입장에서는 세금을 재원으로 하는 공공계약의 특성상 환율 하락 등으로 물가가 떨어질 때에는 그에 상응하는 내용으로 계약금액을 하향 조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 경우 계약금액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한다면 계약상대방이 좀 더 저렴하게 자재 등을 조달할 수 있는 것이 명백한데도 부당하게 과다한 예산을 집행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약담당공무원은 이러한 물가변동 등에 따른 계약금액을 조정할 의무가 있고, 물가변동 등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규정을 위반하여 계약금액 조정을 포기하거나 고정가격으로 약정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다수의견에 따르면 이 경우에도 계약담당공무원이 물가변동 등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규정을 위반하여 계약금액의 조정을 포기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되어 부당하다.
(9) 국가기관은 물가변동에 따른 계약금액의 조정 규정이 강행규정이라고 유권해석을 하였다. 기획재정부는 국가기관이 체결하는 공사계약에서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은 발주기관과 계약상대방의 의무사항으로 규정되어 있어 계약당사자 사이에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을 배제하는 특약을 정하는 것은 법령의 규정에 위배된다고 유권해석을 하였다(2007. 6. 19. 회제41301-622).
또한 물가변동 적용 대가의 산정은 계약금액 중 조정기준일 이후에 이행되어야 하는 품목 또는 비목 전체를 대상으로 하므로, 일부 품목을 물가변동 산정에서 제외하는 특약은 무효라는 유권해석을 하였다(2007. 6. 19. 회제41301-131).
그 후 조달청도 같은 내용으로 유권해석을 하였다. 공공계약을 체결하는 다수의 계약상대방은 이러한 유권해석을 바탕으로 법률관계를 형성해 왔다.
다수의견은 법률규정에 충실한 유권해석을 통하여 30년(환율변동의 경우 9년) 넘게 정착되어 온 공공계약 시장질서에 예기치 않은 충격을 줌으로써 혼란을 야기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10) 대법원 2003. 8. 22. 선고 2003다318 판결은 계약금액 고정특약이 당사자 사이의 합의에 따른 것으로서 국가계약법 제19조에 위반되어 무효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판결은 국가가 국제부흥개발은행(The 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 이하 'IBRD'라 한다)으로부터 차관을 받아 그 재원으로 국제입찰에 따라 외자물품계약을 체결하면서 계약금액 고정특약이 포함된 IBRD 발행의 표준입찰서류(Standard Bidding Documents)를 기준으로 계약조건을 정한 사안에서,
구 외자구매계약규정(1996. 12. 31. 대통령령 제15187호로 폐지되기 전의 것) 제7조, 제11조가 외자구매입찰에서 정부에 유리하거나 상관례가 있는 경우 광범위한 예외를 인정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계약금액 고정특약을 유효라고 판단한 것이다.
구 외자구매계약규정은 '외자구매의 원활을 기하기 위하여 국가계약법 시행령에 대한 특례를 규정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제1조).
따라서 위 판결은 위와 같은 특례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공공계약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11)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4조는 '계약담당공무원은 계약을 체결함에 있어서 국가계약법령과 관계 법령에 규정된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특약 또는 조건을 정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정하고 있다. 공공계약에서 정한 특약 또는 조건이 계약상대방의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경우 그 특약이나 조건은 효력이 없다.
위 규정은 일반법규의 성격을 갖고 있고 물가변동 등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규정은 특별법규의 성격을 갖고 있다. 물가변동 등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규정에서 정한 요건을 충족하는데도 이를 배제하도록 약정한 경우에는 그 특약은 무효이고 이 규정에 따라 법적 효과를 부여하여야 한다.
물론 이 요건을 충족하지 않더라도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4조를 위반하는 특약이나 조건은 무효라고 보아야 한다.
국가 등의 계약담당공무원이 입찰안내서 등을 통하여 계약상대방에게 물가변동 등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규정의 적용을 배제하도록 하였다면, 그 자체로 국가 등이 우월한 지위를 남용하여 국가계약법 제19조와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64조 제1항, 제7항에서 정한 물가변동 등에 따른 계약금액의 조정에 관한 계약상대방의 계약상 정당한 이익과 합리적인 기대를 부당하게 제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라. 위에서 본 법리에 비추어 원심판결을 살펴본다. 원심은 국가계약법 제19조가 국가와 사인 간의 계약관계에서 관계 공무원이 지켜야 할 계약사무처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것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환율변동을 포함한 물가변동의 경우에도 계약금액을 조정하지 않기로 한 이 사건 공사계약특수조건(Ⅱ) 제15조를 무효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판단에는 국가계약법상 물가변동 등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규정의 효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여야 한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다수의견에 찬성할 수 없음을 밝힌다.
6.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김창석의 보충의견
가. 국가계약법 제19조는 "각 중앙관서의 장 또는 계약담당공무원은 공사·제조·용역 기타 국고의 부담이 되는 계약을 체결한 다음 물가의 변동, 설계변경 기타 계약내용의 변경으로 인하여 계약금액을 조정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계약금액을 조정한다."라고 하여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런데 위 규정에서 계약금액 조정의 원인이 되는 '물가의 변동'에는 계약금액을 구성하는 각종 품목 또는 비목의 가격이 상승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하락하는 경우도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야 하므로, 위 규정은 계약상대자에게 이익이 되는 증액조정만이 아니라 계약상대자에게 불이익이 되는 감액조정도 예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국가계약법상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 규정의 주된 목적은 계약상대자의 보호에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예측하지 못한 물가상승에도 불구하고 당초 약정된 계약금액에 따른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의무이행을 고수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부실한 의무이행을 막아 공공계약의 목적 달성에 지장이 초래되는 것을 방지하고, 다른 한편 물가하락의 경우에는 계약금액을 감액함으로써 예산을 절약하기 위한 국가 등의 필요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물가의 변동으로 인하여 "계약금액을 조정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그 계약금액을 조정한다는 문언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이는 국가계약법 제19조의 수범자로 '중앙관서의 장 또는 계약담당공무원'만을 규정하고 있다는 점과 함께,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정함으로써 계약업무를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제1조)는 국가계약법의 입법 목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국가계약법은 제19조와 다른 내용으로 체결된 계약의 효력에 관하여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아니하였다.
또한 국가계약법 제5조 제1항은 "계약은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당사자의 합의에 따라 체결되어야" 함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국가 등을 당사자로 하는 계약도 근본적으로 당사자의 합의에 따라 체결되는 사법상 계약임을 확인하는 한편, 계약담당공무원 등이 지켜야 할 사항으로 국가 등이 계약상대자에 대하여 우월한 입장에서 계약을 체결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국가계약법 제19조를 계약상대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으로 해석할 수는 없고, 결국 위 조항을 계약상대자에 대하여도 직접적인 효력을 갖는 강행규정으로 해석하여야 할 근거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비록 계약상대자의 보호가 입법의 동기가 되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국가계약법 제19조의 규정내용은 물론 국가계약법 전체의 규정내용과 체계에 비추어 그러한 입법동기만으로 위와 달리 해석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국가계약법 제19조를 계약상대자에 대하여도 직접적인 효력을 갖는 강행규정으로 해석한다면,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당사자의 합의에 따라 체결"된 사법상 계약관계에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국가 등이 개입하여 가격 통제권을 행사하는 것을 용인하는 것이 되며, 이는 아래와 같은 헌법적인 문제점을 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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